[FM투데이=김영삼의 컬쳐홀릭] <무한도전>이 버려야 할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고유명수’로서의 박명수 캐릭터 만들기 이다. 다양한 캐릭터의 생성도 좋고, 부진한 멤버 기 살려주기도 좋지만, 그것이 프로그램에 해를 끼친다면 과감히 도려내야 할 요소다.
근래 <무한도전>의 캐릭터가 빛을 발한 것을 본다면 길이 한참 주가를 올리고, 이후 정준하가 바통을 이어받은 모양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프로그램이 나아 가려는 방향에 맞춰 컨셉을 흡수 소화했다는 점이다.
길이 적응하지 못하는 컨셉에서 갑자기 신동 급 컨셉처럼 착 달라붙는 웃음을 안겨준 것은 시청자가 길을 더욱 아끼는 계기가 되었다. 천치 캐릭터에서 이제는 제법 <무한도전>의 흐름을 알고 적당히 끼어들 줄 아는 길의 모습은 시청자가 회의감에서 친밀감으로 바뀐 기회였다. 이젠 제법 뭘 안다고 아는 척하는 모습이 한 웃음 준다.
정준하는 퉁명스럽지만, 분위기를 빨리 파악하고 최대한 바보인 척한다. 길이 똑똑해진 캐릭터라면 반대로 정준하는 더욱더 바보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진짜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을 바보로 바라보는 이에게 퉁명스러운 핀잔을 던질 때다. 그 효과가 배가되는 것은 박명수가 던지는 진짜 하찮은 멘트일 때다.
‘하와 수’ 캐릭터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상극의 캐릭터인 정준하의 퉁명스러움이 있어서다. 다른 멤버가 가진 캐릭터의 성격으로는 박명수를 받쳐줄 만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박명수가 던지는 애드리브가 개인적인 것일 뿐. ‘무도’ 포맷과 일치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를 잘 알 수 있는 것은 박명수의 고향인 군산으로 떠나는 여름여행 차 안에서 그가 던진 애드리브가 대표적으로 그 상황을 대변한다. 늦게 출발했기에 군산에는 늦은 시간에나 도착할 것이라는 말에 ‘조선시대 같았으면 안성도 못 갈 것이란’ 상황과는 먼 상상 애드리브에, 정준하는 ‘조선시대 때 내가 안성을 뭐하러 갈 일 있다고!’ 라며 던진 말은 퉁명스럽지만 사라졌을 만한 박명수의 말을 살리는 멘트였다.
이번 여름여행으로 군산을 택한 것은 복불복으로 결정된 것이었지만, 전체적 분위기상 ‘무도’를 위해서보다는 박명수를 위한 배려가 남달랐던 특집이라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군산에서 뽑아낼 분량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워낙 계획에 없는 무작정 떠나는 여행 컨셉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군산이 박명수의 고향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촬영을 진행했다면 오히려 뽑아낼 웃음이 더 많았다고 생각하기에 이 올인은 그래서 보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번 특집은 문제가 됐었던 모 팝아티스트의 고(故) 박정희 대통령 생가 방문 논란을 연상시키는 특집처럼 보였다. 단순히 박명수의 추억이 담긴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 여름여행의 제대로 된 맛보다는 겉핥기 여행이었다는 점. 박정희 생가 탐사에서 보인 겉핥기와도 유사하다는 점이 그나마 생각 할 거리. 군산여행 대부분이 박장군(방송 별명) 박명수의 일대기를 살피는 여행이었던 점은 풍자요소로 보이지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시청자라면 무미건조한 <무한도전>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라 아쉽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주는 대부분의 웃음은 ‘소 뒷걸음치다 얻어걸리는 류의 웃음’이 특징이다. 뚜렷한 무기보다는 대부분 이런 식의 웃음이 전부다. 그런데 문제점은 뚜렷한 무기가 없는 이에게 어떤 특집을 밀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대부분 웃음이 말라버린 <무한도전>이 되는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번 <무한도전> 또한 그랬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는 약간 다를 수 있었으나 이 특집은 박명수를 위한 특집이라 생각해도 무리가 없던 분량의 방송이었다. 그가 예언하는 이가 우승을 하면 그가 우승이 되는 특집은, 그러나 박명수의 무리수에 다시 한 번 엉망진창이 됐다.
방송이 난장판이 된 이유는 자신이 우승하기 위해 미리 예언한 우승후보인 정형돈에게 돈가방이 든 라커룸의 열쇠를 던져준 것 때문이다. 9번 키를 6번 키로 오인해 던져준 것으로 웃음을 준 것처럼 포장됐지만, 그것은 칭찬보다는 비난해야 하는 일이기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지금까지 박명수를 위해 만든 포맷은 대부분 처음 기획된 것에 맞춰 진행된 것이 없다. 항상 그가 던진 무리수에 포맷이 노출되거나 어그러진 것이 대부분이다. 박명수에게 맞는 옷이란 다른 이들과 어떤 주제로 만들어진 포맷에서 따라가며 얻어걸리는 웃음이 훨씬 자연스럽다.
차라리 <무한도전>은 박명수 때문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하하와 정형돈, 노홍철에게 신경 쓸 때다. 그만큼 신경 썼으면 충분하다. 이번 ‘무도’에서 가까스로 건진 화젯거리는 배구선수 김요한과 가수 서지영, 슈퍼주니어를 만난 것과 군산여행 중 박명수 모교에서 만난 김다혜 여선생님. 그리고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가공할 만한 생활기록부 디스 기록 ‘생활 정도는 보통이나 교육에 대한 관심은 없음. 옷은 고급으로 입히고 있음’이란 말 정도가 회자될 뿐. 이 화젯거리의 공통점이라면 외부요소가 준 웃음이라는 것.
[칼럼니스트 김영삼 susia0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