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투데이 | 김영삼의 컬쳐홀릭] 예능 <라디오스타>의 재밋거리 중 하나는 뭔가 대단한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깔아뭉개주는 시니컬함이 있어서다. 게스트가 아무리 잘났다고 아우성 돼도 ‘라스’ MC가 떠받드는 것이 아닌 이상 그 잘났다고 외치는 것도 힘을 잃는 것은 다반사다.
그 옛날 혼자 세계적인 스타라 우겨대던 비 정지훈의 <무릎팍도사> 출연으로 <라디오스타>가 5분 방송을 해야 했던 시기를 거쳐, 이후 <라디오스타>에 다시 출연했을 때 5분 방송으로 되갚은 것은 ‘라스’만의 고유 성격이기도 했다.
아무리 잘난 척하더라도 내가 생각할 때 잘나지 않은 사람들이 잘난 척하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시청자를 위해, ‘라스’가 대신 역할을 해주는 것은 속이 후련했으며 빼놓지 않고 보는 이유였다.
그런 대표적인 역할을 하던 MC가 바로 김구라였고, 그에 더해 윤종신이 주워 먹는 개그로 확인 사살을 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신정환이 나서 김구라에게 ‘너나 잘해’ 식의 개그를 하고, 때로는 ‘우쭈쭈’ 달래는 모습이 극강의 웃음으로 치닫게 하는 지점이었다.
김구라는 독설 캐릭터를 이용해 게스트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게 다반사였고, 게스트가 어떤 시상식에서 수상했는데, 그것이 크게 알릴 만한 것이 아니라면 대놓고 밟아 속 시원하게 했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무시하는 게 아닌 시청자가 아니꼬울 만 할 때 독설을 날리던 것이 김구라의 특기였다.
그런 특성이 있는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 거지, 몸종, 내시, 그리고 변태 특집>에는 이병준-라미란-김기방-최우식이 출연해 각기 나름의 매력을 자랑했고, 그 중 ‘이병준’은 MC가 보여줄 시니컬함을 같이 출연한 게스트에게 돌려 포복절도케 했다.
이병준은 매사 대답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 딱 잘라 상황을 종결시키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줬다. 일반적으로 진행의 맥을 끊는 것이라면 비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이병준은 진행의 맥을 끊는 게 아닌 굳이 대답할 가치가 없는 것을 장난성으로 무시하는 식이어서 웃음을 줬다.
최우식이 자신의 잘생긴 형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고 이후 “오늘 처음 보는데 상태가 안 좋네요”라고 소감을 말한 장면은 단연 최고의 웃음이 된 장면.
이어 김기방을 가리키며 “저도 이런 친구들도 사귀고 싶지만”이라고 말 끝을 흐리자 김기방이 애드리브로 “(그럼) 현장 좀 따라다녀 드릴까요?”라고 했고, 이에 이병준은 “아, 저는 대본을 외워야 하기 때문에”라고 확실히 거절하는 모습은 포복절도할 장면이었다.
또한, 자신이 대꾸할 가치가 없는 수준 낮은 개그에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MC가 리액션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라고 하면 ‘같이 놀아주고 싶지 않다’, ‘이런 애들 이야기에 끼고 싶지 않다’는 장난성 무시는 여러 번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김구라 또한, 김기방이 장난으로 말했지만,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가 잘 됐다고 우쭐대면 실패한 드라마인 <메디컬탑팀>을 들춰 내 한 번 지그시 밟아주는 면은 적당한 웃음이 됐다. 이어 누구에게도 자랑하고 다니는 ‘조인성과의 친구 관계’의 이야기에서도 김기방이 신나서 자랑을 하면 “도움만 받지 말고 좀 줘”라며 눌러주는 면은 시청자가 웃을 수 있는 지점이었다.
김구라는 최우식이 자신의 형을 두고 한 행동 ‘니(너) 지금 이 방송 보고 있나?’ 식의 의외성 제스처와 김기방의 초성게임 개그, 라미란의 19금 애드리브, 이병준의 시니컬한 토막 개그에는 아낌없는 찬사의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준비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쏟아지는 애드리브성 개그에는 아낌없는 웃음을 주고, 준비한 것 같은 자랑성 애드리브에는 가차 없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여기는 모습. 거기에 이병준이 김구라가 하던 시니컬한 대우를 같이 출연한 이들에게 하는 모습은 많은 웃음을 준 대목이었다.
<라디오스타>의 시니컬한 면이 예전에는 일상화됐었지만, 현재 그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김구라의 독설에 박자감을 맞춰주는 이가 부족해서이다. 김구라-신정환-윤종신의 3박자의 마력은 대체 불가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 방송이 ‘거지, 몸종, 내시. 그리고 변태 특집’이었다. 그 향수를 이병준과 김구라가 기억하게 했다.
[칼럼니스트 김영삼 susia0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