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투데이 | 김영삼의 컬쳐홀릭] 노희경 작가의 새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사람 간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는 일종의 학문과도 같다. 노희경의 관계학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환상을 주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바라봐야 보이는 것이고, 철저히 자신을 바라 봤을 때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기획의도에서 밝혔듯 노희경은 ‘우리가 인생에서 반드시 만나야 할 단 한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 나 자신’이라고 말한다. 나 자신을 알아야 자신을 아낄 수 있고, 나 자신이 보여야 내 주변 사람도 보여 아끼고 아낌을 받는다는 진리.
그녀의 표현은 투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를 최대한 화사에게 표현하려는 김규태 감독의 영상은 말하려 하는 메시지를 잘 녹여내 친절히 알리고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 2화에서 볼 수 있던 장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트랜스젠더의 흔들리는 자아를 다잡아 주는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의 바람직한 의사상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며 접근해야 하는 방법과 그들 자신이 바람직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놀라움을 자아낸다.
트랜스젠더 세라(이엘)는 자신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꾼 것이 죄라 여기는 인물이다. 이런 생각은 부모형제 모두가 바라보는 시선이었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옳다 생각했기에 그저 자신은 죄인이라 여겼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부모형제가 죽을 만큼 폭력을 휘둘러도 그 아픔을 감당한다. 그게 자신이 잘못한 결과라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고, 끝내 목숨까지 버리려는 선택을 하지만 다행히 살아 지해수의 도움으로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알게 된다.
지금까지 그녀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은 자신을 둘러싼 시선이 모두 옳다 생각한 것이다. 그저 남의 시선에 맞춰 살아 가야 한다는 강박에 정작 자신의 생각은 전혀 없었던 사람. 자신의 정체성은 여성이고 남성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윤리를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자신보다는 남의 시선으로 살아왔던 것이 트랜스젠더 세라였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소중히 여길 생각도 못했던 것.
지해수는 세라에게 “이해해야 할 사람은 부모님이 아니라 본인이다”란 말을 해 자신을 바라볼 줄 알아야 남도 이해하고 이해시킬 수 있다는 깨우침을 준다. 지금까지 세라는 남들만을 이해해 그 사람의 감정이 안 좋아 휘두른 폭력에도 방어를 하지 않았다. 올바른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남의 행복추구권을 막아서도 그녀는 상대의 말이 옳다 생각하여 아픔을 참아 버릇했다. 몸이 앞은 것은 참을 수 있다는 그녀였지만, 마음이 우선해 선택한 자신의 선택권을 망각하고 소중한 자아를 잃었던 것이다.
노희경의 접근법은 무척이나 세련되고 현실적이다. 지금까지 드라마들이 트랜스젠더를 그저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사람 정도로 뭉뚱그려 그렸다면, 노희경은 그들 자신이 먼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깨닫게 해 관계를 올바르게 넓혀가라 말한다.
사회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가장 흔한 것은 고립되는 상황이고, 이때 생각하지 말아야 할 극단의 선택을 하는 이들이 있기에 무엇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노희경의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인물 간의 관계 또한, 무척이나 흥미롭다. 조인성이 극중 맡은 배역인 장재열은 3년을 만난 애인에게 소설을 표절 당한다. 그런데 이 표절을 도운 이가 20년 지기의 친구이자 자신의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 대표다. 20년 지기 친구인 그는 자신의 애인과 부적절한 관계에 놓인 인물이다.
이게 그렇다고 장재열(조인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효진의 애인은 메인 PD이고, 그 메인 PD는 공효진의 후배인 조연출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 두 주인공 모두 삼각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충격적이나 충격을 먹지 않은 사람처럼 무딘 반응을 보인다. 그저 잠시 화 한 번 내면 끝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들은 늘 큰 배신과 아픔으로 마음이 헤지고 헤져 무딘 사람인 된 것처럼 행동을 한다. 사실 마음은 찢어질 정도로 아프면서 그것을 자기도 모르게 숨긴다.
같이 모여 살게 된 조동민 역 성동일과 박수광 역 이광수. 그리고 장재열 역 조인성과 지해수 역 공효진. 그리고 그 주변인들의 관계는 무척이나 복잡하고 전부 꼬인 실타래처럼 이어져 있다.
이사온 장재열 조인성을 환영한다고 파티를 열 것 같던 분위기는 축구 응원을 위한 모임이 된다. 그 자리에서 박수광 역 이광수는 큰 비밀을 누설하고, 조인성은 실수를 해 자리는 엉망이 되고 만다. 모두가 키스나 섹스로 이어진 관계처럼 보였기에 장재열의 눈엔 지해수도 프리섹스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보인 것.
이 얽히고 설킨 관계들이 흥미롭고 재미를 주는 것은 이렇게 얽힌 관계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와 그게 아닌 관계가 종이 한 장 차이로 동시에 존재함을 알린 것이다. 구체적으로 노희경이 말하려 하는 건 무얼까? 그건 아마 겉으로 보이는 몸뚱어리의 부대낌이 관계를 유지해주는 것이 아닌, 정서적 교류가 서로의 관계를 끈끈하게 한다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게 한다.
노희경의 복잡한 관계학은 어쩌면 간단하게 풀어갈 수 있는 관계학이라 말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재열이 기존 3인이 이룬 관계에 쉽게 빠져들지 못한 것은 그들이 살아가던 방식에 온전히 흡수되지 못 한 것 때문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해질 때라면 장재열의 마음 온도가 그들의 마음 온도와 비슷해지는 시기부터일 것이다. 이를 노희경은 어떻게 풀어 나갈지 그게 궁금하다. 노희경의 드라마의 특징이라면 긴 호흡에서 느끼는 감동이 제 맛이었다. 조급하게 바라보지 않고 즐기다 보면 우리는 또 하나의 명작을 보는 즐거움을 누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칼럼니스트 김영삼 susia0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