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투데이 | 김영삼의 컬쳐홀릭] <무한도전>은 거의 유일하게 남은 사회풍자 예능이자 유일한 버라이어티 풍자 예능이다. 상황극을 펼칠 수 있는 너른 무대는 스튜디오만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민속촌은 물론이요. 때론 길거리 어느 곳에서나 행해지는 그들의 풍자 본능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표현된다.
‘무도, 폭염의 시대’의 배경이 된 곳은 민속촌이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어도 그들의 표현은 거침이 없으며, 관광객과 시민들이 있어도 굳이 피해를 줘 가며 촬영을 하지 않는다. 다만 최소의 촬영 방해 요소만은 방어를 하는 편.
더욱이 이번 기획은 민초의 고단한 삶을 녹여낸 기획이기에 그런 삶을 살아가는 백성과 함께하는 모습이었다.
<무한도전>은 ‘무도, 폭염의 시대’를 시작하며 내레이션과 자막으로 “모든 곡식이 마르고, 한강의 물줄기가 끊기다”라고 표현했다. 영상은 백성이 시름하는 모습을 보였고, 성난 민심은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얼음을 독점한 고관대작의 집을 향해 얼음 나누기를 권한다.
하지만 그리 쉽게 얼음을 나눌 김대감(배우 김학철)은 아니었고, 조건을 걸어 얼음 무이자 대출을 한다. 그러나 그가 무이자 대출을 하면서까지 나눈 얼음은 애초 백성 누구에게도 갈 수 없는 조건일 수밖에 없었다.
김대감이 내 건 조건을 맞춘다는 것은 애초 현실적으로 불가한 일이었기 때문. 성난 민심이라 해도 백성은 어차피 김대감의 조건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 조건이란 것은 큰 얼음덩이를 가져다 바쳐야 하는 것인데 그게 쉬울 리 없다. 더욱이 백성의 분란을 유도한 계략은 백성인 ‘무도’ 멤버끼리 뺏고 뺏기는 과정으로 이끌게 된다.
실제 현실을 돌아보면 대한민국은 4대강으로 인해 살지 못 할 국가의 모습을 띠고 있다. 녹조에 가뭄으로 말라터진 저수지. 농사에 필요한 물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게 현재다. <무한도전> 내레이션과 자막에 숨어 있는 ‘한강의 물줄기가 끊기다’란 말은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혼란에 빠진 민초들은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식량을 구걸하고, 극심한 폭염에 고통을 호소하던 민초들은 얼음을 구하기 위해 애쓰지만’이란 내레이션. 이 내레이션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현 시대 한국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 앞으로가 걱정이기에 이 말이 더 다가올 수밖에 없다.
김대감이 얼음 대출을 해주며 내건 조건은 이 시대 대출과 같은 모습이다. 내버려두면 녹아 원형을 유지할 수 없는 실체. 갚을 때에는 원형을 유지해 갚으라지만, 실제 갚아야 할 돈은 이자를 더해 갚아야 하기에 은행과 대출업체에 배 불려 주는 형상.
게다가 그렇게 얻은 얼음덩이에 달라붙는 방해 요소는 얼음을 유지할 수 없게 한다. 소금으로 저려진 얼음은 더 빨리 녹아 없어지고, 계략에 빠져 국밥을 먹는 동안 불판 위에서 녹아 없어지는 얼음덩이는 과도한 세금을 가리키는 듯했다.
민초는 죽어라 벌지만, 더 죽어라 뜯어가는 고리대금과 이자. 그리고 세금은 민초의 시름을 깊게 한다.
‘폭염에 신음하는 어지러운 세상. 삼강오륜과 맞바꾼 난세’는 대한민국의 현재이기도 하다. 폭정과 무능력한 정치. 여야 정치인들은 협잡꾼이 되어 윤리와 도덕을 저버리며 국민을 속이고, 무지한 국민은 그런 정치인들의 입놀림에 놀아나 무지함을 서로 자랑하는 형세.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의 실체이다.
‘뭉치면 도적이요. 흩어져도 도적이니’란 말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을 가리키는 듯 했으며, 정형돈이 말한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적’이란 말은 협잡을 일삼는 정치인을 선망하는 백성의 모습을 표현한 듯했다. 난세에 뭉쳐야 할 이들은 백성이건만, 뭉치지 않고 흩어져 도적을 선망하고 도적질에 가담하는 백성의 모습. 그리고 그런 이들을 자랑스레 뽑아 잘 뽑았네! 하며 성취감에 자위질하는 백성의 모습이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으로 슬프지 아니한가!
<무한도전>의 여름 특집인 ‘무도, 폭염의 시대’는 풍자를 게을리하지 않은 특집이다. 이 시대의 정치인들은 무지한 백성을 원하지만, <무한도전>은 상으로 받은 얼음덩이를 갈아 함께 하며 더 나은 백성이 되라 말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영삼 susia0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