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투데이 | 김영삼의 컬쳐홀릭] 높기만 했던 지상파의 콧대는 불과 5년 만에 케이블 사업자와 종편(종합편성채널)에 따라 잡혀 무너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CJ E&M 계열에 밟히고 종편 JTBC에 짓이겨지는 수모를 겪고 있다.
유재석의 이번 JTBC 파일럿 예능 MC 진출은 지상파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충분히 자존심 상했지만, 그나마 마지막 보루였던 상징적인 권력이 이동하는 것을 목도하는 그들의 마음은 적잖이 씁쓸할 만하다.
예능계 일인자의 이동은 기존 지상파로선 모든 것을 다 잃은 것과도 같다. 성적 면에서도 이미 추월당했는데 간판을 떼어주는 격이니 이 사건은 기념비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당장 모든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가는 것은 아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겠지만, 유재석의 종편 진출은 지상파가 더는 우쭐할 만한 근거가 없어지는 계기이기에 더욱 씁쓸할 수밖에 없다.
유재석이 종편 JTBC에 진출하는 것은 지상파가 그에게 얼마나 제대로 된 콘텐츠를 제시하지 못했는가! 를 여실히 보여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3대 지상파 중 유재석을 제대로 써먹는 곳은 단 2곳인 <무한도전>과 <런닝맨>이다. 이 프로그램은 콘텐츠로 그를 잡고 있는 프로그램이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겠지만,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와 <해피투게더>는 몸살 앓을 일만 남았다고 봐도 무난해 보인다.
<동상이몽>의 경우는 호평을 받고 있지만, 유재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프로그램이고 콘텐츠도 매력적이지 않기에 그를 오래 잡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해피투게더>는 벌써 크게 변화를 보였어야 했지만, 개편을 외면한 지 오래됐기에 언제 그만둬도 이상할 게 없는 프로그램이다.
그와 김태호 PD가 있어 유지된다고 하는 <무한도전>도 ‘식스맨 특집’으로 신뢰도에 금이 갔으며, 오랜 팬덤이 떨어져 나가는 시점이기에 그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긴 어렵다. 조작된 팬심이 프로그램을 망쳤고, 오랜 연예 권력이 있는 소속사는 자사의 멤버를 꽂아 넣어 난장판을 만든 게 현재 <무한도전>의 모습이다. 모를 수 있지만, 안다면 그로선 오만 정이 떨어질 일이다.
일단 <무한도전>과 <런닝맨>이 그에게 안정적이고 신뢰도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타 프로그램들은 보류하고 있던 종편 진출에 불을 지폈을 가능성이 크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정도 유재석은 매번 수상도 양보하며 자리를 내줬고, 시청자의 개편 요구를 받던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하며 기다려줬던 것이 그다.
<놀러와>를 급작스레 폐지해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근 3년 시청자가 개편을 요구했던 <해피투게더>도 묵묵히 진행하던 것이 그다. 그는 긴 시간 동안 좋은 콘텐츠가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무사안일하고 게으르며, 크레에이티브하기보다는 카피하길 좋아하는 지상파 PD들은 그에게 멋진 콘텐츠를 제시하지 못했다.
유재석은 이미 종편으로 향하던 연출 PD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바 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이어진 러브콜이 있음에도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노려왔다. 하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매력적인 미래를 제시하지 못했기에 그는 창조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JTBC로 먼저 향한 것이다.
이번 움직임은 시작에 불과하다. 바위처럼 단단히 자리하고 미동도 않던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기에 CJ E&M과 JTBC는 본격적으로 그에게 좋은 콘텐츠를 제시해 같이 하길 원할 것이다.
머리가 굳고 조직에 지배되기만 하는 기존 지상파 PD들이 제시하는 획일적인 콘텐츠는 이제 유재석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대신 JTBC와 tvN의 젊은 두뇌들이 그를 만족시킬 일만 남았다.
유재석의 종편 출연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지상파가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는 곳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시청자의 채널 이탈도 뒤따를 것이다. 지상파가 비상상태가 될 것은 분명하다.
다매체 시대에 승부수는 더더욱 콘텐츠가 될 것이다. 유재석도 안정적이기보다는 도전하는 것을 선택했기에 그의 결정은 환영할 만하다. 유재석은 콘텐츠의 경쟁시대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안주할 수 없는 지상파의 다음 대응이 궁금하다. 그들은 쉽게 변하지 않고 몰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영삼 susia0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