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투데이 | 김영삼의 컬쳐홀릭] KBS 심야예능 프로그램 ‘개승자’에서 김준호를 비롯. 김원효, 변기수가 코미디 프로그램에 대한 과한 도덕적 잣대 지적에 대한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조심스럽게 하다 보니까 예전만큼 (개그를) 못 살린다”는 김원효의 말에 이어. 변기수는 “오나미가 지금은 예쁘지만 과거에 못생겼을 땐 직설적으로 1차원적 개그를 했다. 여성분들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남자, 여자 왜 이렇게 싸우냐? 1차원적인걸 막아버리니까 2차원적인 걸로 못 가겠다”라고 했으며.
김준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도 찾아가 1인 시위를 하겠다”고 공감을 표하는 장면이 나왔다. 김준호는 이어 “KBS가 더 빡빡하지 않냐? 옛날에 박준형이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했다. 지금은 개그를 다 비하로 본다. 비하할 의도가 없다”고 한 것.
그러나 이를 두고 언론의 기자는 불편하다는 듯 ‘비하개그는 웃기지 않으니. 하지 말라’는 듯. 비판의 글을 올렸다. 과거 코미디는 허용된 것이지만, 더 이상 이 시대에서는 통하지 않으며. 젠더갈등을 부추길 수 있으니 하지 말라는 투의 글이다.
그러며 그것이 시청자의 수준이 올라가서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표현은 사탕발림 수준의 조삼모사식 선동으로 들릴 뿐이다. 시청자의 수준이 올라갔다 말하는데 실제 그건 아니다. 혐오와 갈등을 부추긴 사회에서 통하지 않는 것일 뿐인데. 마치 잘 개조된 사회인 것처럼 몰아 가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강요를 하는 모습은 헛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현재 방송 프로그램으로 향하는 도덕적 잣대는 너무도 과도한 나머지 제작 자체가 불가한 수준까지 간 게 사실이다. 그들이 토로하지 않았다고 해도 있는 사실 그대로다. 부분만 떼어내 그들의 표현이 부적절하다 주장하는 것은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나. 코미디에서 할 수 없는 표현도 아닐뿐더러. 과도한 제한이 표현의 자유를 방해하기에 그들은 최대한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는 ‘못생겼다’는 표현이 비하를 위한 것도 아니고. ‘못생겼다’라는 말을 통해 사회 비판과 풍자까지 의미를 곧잘 포함하고는 하는데. 그런 사소한 것까지 세세하게 제약을 하려 하니 분위기가 경색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우리는 흔히 친구끼리 장난으로 ‘못생겼다’라 말한다. 그건 미적 기준에서 ‘못생겼다’라고 하는 게 아님은 누구나 안다. 순도 90% 이상의 농담 격이며 비하의 의미가 아니다. 서로 웃자고 하는 말까지 의미를 통합해 쓰지 말자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며 타인 통제일 뿐이어서 자제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못 생긴 걸 소재로 하고. 뚱뚱한 걸 코미디적 요소로 쓰는 걸 제약할 근거도 없다. 그저 시대가 변화하면서 외모 비하 개그를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한 편의 주장일 수 있지만. 그걸 전체의 불편함이라 생각하여 프레임 전환해 제약할 근거가 없다. 한쪽의 주장을 존중해 조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의무가 아니다.
욕설 혹은 지나친 혐오적 발언. 편향된 시선을 줄 수 있는 발언을 삼가라 요구할 수 있으나. 의도한 의미가 아닌 편향된 해석에서의 사용 자제 요구는 무리한 요구로 보여 반대로 무리한 요구를 한 이를 질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딴지를 걸어 예능이 다큐멘터리화된 것은 최근 겪은 가장 뼈아픈 문화 후퇴 현상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일희일비하는 반응에 방송사가 놀아나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여성 출연자를 향한 ‘담배 농담’이 개그 소재가 되는 것에 대한 노엽다는 반응도.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코미디적 요소라 생각하면 될 일. 까탈 부리며 딴지만 부리는 언론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볼 수밖에 없다.
그저 쉽게 하는 농담에. 굳이 뭐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부여해 그 사람을 저격하고. 뿌듯해 우쭐하는지 그 모습이 의아하다. 평소 우쭐할 게 얼마나 없으면 그러는 것인지? 그저 의아하다.
외모가 기준이 되어 그들을 우습게 대한 사례가 있었나? 못 생겨서. 뚱뚱해서.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누구나 나서 분위기 환기시켜 권익을 보장해 줘야 하지만. 외적 기준에서 비하받을 것 같다고. 미리 재단해 악마로 취급하며 활동에 제약을 주는 것은 오히려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여겨져 프로불편러 기자들의 주장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
코미디 프로그램 스타일이 모두 착할 필요도 없으며. 같은 외모의 같은 스타일 코미디언만 있을 필요도 없다. 잘 생긴 사람이 도령류, 기생오라비류 역할을 맡고. 조금 독특한 외모의 사람이 방자류 역할을 맡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 거꾸로 잘 생긴 사람이 바보 역할을 맡을 수도 있고. 못 생겼다 하는 사람이 멋진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그건 그저 정형화되지 않은 표현식일 뿐이다. 왜 강요를 해가며 일률적인 패턴을 받아들이라고 할까? 그냥 자유롭게 풀어놓고. 너무 과할 때 비판 정도만 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해도 그들은 알아서 제 궤도를 찾을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영삼 susia0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