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투데이 | 김영삼의 컬쳐홀릭]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속 이미주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 위원의 비판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런 시비에 예능기획센터장이 친절하게 답하고. 그것도 모자라 저자세를 보인 건 질타를 피할 길 없는 일. 이유는 비판이 아닌 시비와 강요에 굴한 것이고. 혐오적 정서를 반영해 사회를 혼란시키려는 시도에 발을 맞추는 것밖에 안 되기에 방송사의 저자세를 질타할 수밖에 없다.
이미주의 캐릭터는 의도한 백치미 캐릭터도 아니며. 연출에 의한 것이 아닌. 출연자 개인의 개성 표출을 살려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풀어놔 탄생한 캐릭터다.
타 방송사 프로그램인 <식스센스>에서도 비슷한 캐릭터였기에. 굳이 <놀면 뭐하니?>에서까지 같은 캐릭터를 할 필요가 있느냐? 는 시청자 위원 한 명의 지적이 있었다고 해서. 해당 캐릭터를 보여주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가공한 캐릭터가 아니라 이미주 자체의 개성 표출인데 그걸 인위적으로 가공해 보여주려 한다면 오히려 그걸 질타해야 옳을 일이다.
‘젠더 감수성’이 요구되는 시대이기에 이미주의 ‘예쁘고 섹시한 백치미 캐릭터’가 불편하다는 시청자 위원의 일방적 요구는, 그들에게 왜곡된 시대의 흐름을 이용한 개성 말살 시도로 보일 뿐이다.
또 혐오적 정서를 강건하게 하려는 시도로 비칠 뿐이어서 거리낄 수밖에 없다. 여성은 왜 예쁘게 보이면 안 되는지. 왜 섹시하게 비치면 안 되는지. 왜 백치미가 없는 여성으로만 비쳐야 하는지. 그것이 여성운동의 본질인지 묻고 싶어질 정도다.
여성이 여성으로 인정받는다는 건 여성 개개인의 정체성을 살려주는 데서 시작하는데. 판에 찍어내듯 자신들이 원하는 여성상으로 재단해 보여줄 것을 요구해 몰개성 시대에 접어들게 하는 것이 그들이다. 결국, 여성은 여성에 의해 여성다움을 강요받게 되고. 사랑받는 것조차 성적 수치심이란 단어에 가로막혀 표현을 할 수 없는 시대에 연애고자들이 되고 말았다.
이미주가 표현하고 있는 건 단지 이미주일 뿐인데. 왜 그걸 자신들의 여성상 세계관에 대입해 그녀의 모습을 재단하고. 보고 싶은 각도에 맞춰 보여 달라고 하는 건지. 일반 시청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개인적이고. 혐오적 시선. 비뚤어진 여성상에 맞춰 일일이 여성 출연자들의 모습을 재단하려 하니 예능은 다큐보다 재미없는 장르가 되었고. 과거 <무한도전>의 패망은 리바이벌이 되려는 듯 보여 불안감이 엄습한다.
과거 <무한도전>이 패망할 수밖에 없던 건. 일명 ‘무도 시어머니’에 과하게 배려를 하는 차원에서 매일같이 사과 방송을 했기에 패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연출조차 그렇게 통제되고 정제돼 표현되니 웃음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
또 방심위의 지적과 과잉 통제가 있었던 건. 저 시청자 위원 같은 ‘무도 시어머니’의 시비들이 먹혔기에 패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신이 다녔던 방송사 MBC를 직접 저격한 현 카카오M의 박진경 CP의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내가 14년 다닌 엠비씨 때려친 이유 중 하나잖오 이런 느낌의 의견 들에 저자세로 꼬박꼬박 답변해 줘야 함. 소중한 전파 사용의 댓가 달게 받아라 방송국 놈들아!”라고 한 말. 이 말에서는 불필요한 요구에 일일이 답변하고 연출까지 꼬여버린 과거에 대한 분노가 스며 있기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해당 시청자 위원의 지적에 쓸데없이 친절히 대꾸하는 방송사의 저자세. 그런 저자세가 불러올 파장은 PD 입장에서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에, 시청자 위원의 과잉 요구는 분노를 불러온 지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정상적인 시선이 아닌 편협한 여성 운동가의 시선에서의 요구가 프로그램을 망칠 것은 너무도 자명해 보였기에 분노 표출은 또한 자연스럽게 비친다.
이런 편협한 요구에 센터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런 캐릭터를 필요로 해서 섭외한 것은 아니며. 성별을 균등하게 하자는 의도로 섭외했다’고 하니 울화통이 터지지 않았을 리는 만무할 일.
상전도 아니고. 옴부즈맨의 역할 정도 할 시청자 위원이. 프로그램 제작에 일일이 간섭해 가는 모습들은 당연히 어처구니없어 보인다.
이미주의 매력을 보고 섭외했는데. 그 모습이 보고 싶은 여성상이 아니라고 불편하다 하는 시청자위원의 요구에. 방송사는 또다시 머리를 숙이는데. 그걸 누가 좋아할까? 사회 혼란자에 과한 배려를 하면 필시 다음 연출은 망가지기 마련이다. 일선 제작현장을 배려한다면 최대한 표현의 자유는 살리는 쪽으로 대응해주는 것이 센터장의 역할이어야 한다. ‘방송사 놈들에게 바란다.’는 건 바로 그쯤일 것이다.
거꾸로 그들에게 묻고 싶어 진다. 왜 당당해도 될 위치에 오른 여성의 모습을 재단하고. 낮춰 여성이 여성을 쫓아 내려하느냐고? 그들이 바라는대로 ‘숏컷의’, ‘예쁘지 않은’, ‘섹시미 없는’, ‘백치미 없는’ 그런 여성을 꼭 섭외해야만 할까? 너무 과한 요구로 인해 방송사 프로그램이 혼란을 겪을 정도면 그건 지나치게 과한 요구란 걸 이제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영삼 susia0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