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게더3 게스트로 출연한 영화 아부의 왕 주연배우들은 반가움이었다. 이미 두 배우는 낯 익은 반가움이었고, 두 배우는 예능에서 그리 많이 볼 수 없는 배우들이었기에 반가움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예능을 통해서 만나본 성동일과 이병준의 특출 난 재미는 언제나 보장받는 재미를 줘 왔다. 처음서부터 성동일의 활약은 빛이 났다. 다른 날보다 컨디션이 좋다고 하던 그가 박명수의 버럭질을 미리 차단을 하는 방법 또한 빛이 났고, 유재석이 박명수를 포장해 주기 위해 포장하는 시간조차 성동일은 지루하니 됐다고 끊어 버리는 커팅은 큰 웃음으로 다가온 장면이었다.
이병준은 특유의 말투를 동원하여 웃음을 주었는데, 그 웃음이 더 길어질 수 있었던 것은 또 그만큼이나 특이한 말투를 보이는 송새벽이 옆에서 한 마디씩 어눌하게 말을 보태주니 더 웃음이 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 <아부의 왕> 주연 4인이 나온 <해피투게더>는 기본적으로 전체적인 흐름에 ‘아부’라는 컨셉을 집어넣어 진행을 했다. 그런 기획은 더 없이 멋지게 연출되었고, 주제에 충실한 토크는 일부분 꼭 배워야 할 교과서 ‘밑줄 쫙 돼지꼬리 땡땡’ 칠 내용처럼 다가온 것은 시청자에게는 혜택처럼 다가왔다.
특히 ‘성동일’이 전해 준 ‘아부의 원칙’ 네 가지는 아부라기 보다는 생활에서 실천할 필수 교훈처럼 느껴지게 했다. 성동일이 말한 ‘아부의 4원칙’은… ‘없는 데서 칭찬해라’, ‘적절하게 칭찬해라’, ‘같은 칭찬을 여러 사람에게 똑같이 하지 마라’, ‘칭찬과 동시에 부탁하지 마라’였다.
‘아부’라는 의도는 사실 우리에게 부정적인 단어로 들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성동일이 말한 ‘아부의 4원칙’은 아부라기 보다는 실천해야 할 필수 항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내용을 보면 이건 절대 아부가 아니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사람이 있다면 키워 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없는 데서 칭찬해라’. 이 말. 참 어려운 말이다. 극소수일지 대부분일지 모르나 우리 사회 소집단으로 들어가보면 어느 누구를 칭찬하는 이들이 참으로 드문 것을 볼 수 있다. 없는 데서 칭찬해라? 보통이라면 없는 데서 꼭 있지도 않는 일을 보태어 욕을 하는 것이 이 사회의 사람들 특징인데, 없는 데서 칭찬을 한다면 그 사람을 아부쟁이라 표현할 수 있는 자 누구겠는가!
‘적절하게 칭찬해라’. 지나친 아부는 하지 않음보다 못하다! 는 말은 진리일 것이다. 칭찬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칭찬을 하면 듣는 이에게 부담을 주는 법이다. 또한 그 지나친 칭찬은 대가를 바라고 칭찬을 하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들리기에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같은 칭찬으로 여러 사람에게 똑같이 하지 마라’. 진실성의 문제일 것이다. 사람이 누구를 칭찬하는 경우 그 사람만의 고유 칭찬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입에 발린 똑 같은 칭찬을 하는 것은 진심이 담기지 않은 칭찬처럼 보여 그리 좋은 효과를 보여주지 못 할 것이다.
‘칭찬과 동시에 부탁하지 마라’. 빤한 수다. 나에게 누가 칭찬을 하고, 바로 부탁을 한다면 분명 기분이 찝찝할 일이다. 칭찬을 한 것이 부탁을 한 이유 정도밖에 안 되니 그리 유쾌할 수 없는 것이 이유다. 의도성이 드러난 칭찬을 누가 달갑게 여길 텐가!
이 네 가지의 ‘아부의 원칙’을 지켜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처세술의 대가일 것이다. 비록 어떠한 의도를 찾아 볼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만 지키며 사람을 대하는 이라면 그 사람은 무조건 챙겨주고 싶은 사람으로 부각될 것이다.
성동일이 말한 ‘아부의 4원칙’을 지키며 사는 이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주변에는 입에 발린 칭찬을 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돌아서면 욕을 하는 것이 일부 한국 사회인들의 모습이고, 그런 모습을 보며 씁쓸해 한다.
참 우스운 일이지만, 성동일이 말한 ‘아부의 4원칙’과 정확히 반대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이 사회다. 만약 그가 말한 원칙만 지키는 사회가 된다면 이 사회는 무척이나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은 분명하다. <해피투게더> 아부의 왕 출연진 특집은 배움이 있는 특집이 되어준 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