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투데이=김영삼의 스타인터뷰] 영화 <베를린>의 감독 류승완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유로운 그의 삶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무엇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것 같은 그는 <베를린>의 성공이 얼떨떨한 모습이며, 조금은 부담스러운 듯 보였다.
그와 만난 것은 지난 12일 제작사인 외유내강 사무실에서였다. 편한 차림의 류 감독은 그가 만든 영화 포스터가 걸린 사무실에서 편하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줘 긴 시간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그를 알 수 있게 했다.
<베를린>의 성공은 자신보다는 배우들의 힘이 컸다며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은 잠시 하는 말이 아님을 인터뷰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요즘 아마도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일 수도 있는 ‘속편 여부’에 대해서는 딱 잘라 말할 정도로 생각이 없다는 말은 여전했다.
또한, 그가 한 동일한 말. 누가 시나리오를 잘 쓰면 속편은 줄 수도 있다는 말은 허언이 아님을 느끼게도 했다. 그만큼 부담감이 커서일 수도 있다. 그는 연일 자신이 만든 작품들의 기록을 깨나가는 <베를린>이 무척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 이유는 끊임없이 깨야 할 자신의 작품이 생긴다는 것이 부담이라고 한다. 언뜻 행복에 겨운 말 같지만, 지나치게 성공을 해 더 좋은 작품을 했음에도 성공을 못 한다면 생기는 그 이후의 문제는 고스란히 부담감으로 남을 것이기에 이해가 되고 남았다.
필자가 이 영화 <베를린>을 보면서 참 류승완 감독답지 않게 액션 씬이 적어 보인다는 생각을 했기에 물었다. 액션 씬이 줄어들거나 절제된 것 같다고! 그 말에 류 감독은 명쾌한 해답을 줬다. “줄어든 게 아니라 시퀀스 상 길어졌다. 오히려 <짝패>보다 길다”며 이야기를 했고, 이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배경이 바뀌어서 그렇게 느껴진 게 아닐까?”라는 그의 생각은 답이 됐다.
그랬다. 분량은 그의 영화 <짝패>나 <주먹이 운다>, <아란>에서 보인 액션 씬보다 적지만 관객들에게 <베를린>의 액션 씬이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말대로 배경의 힘이 커 보였을 것이라 생각을 하게 했다.
류 감독은 영화에서 쓰이는 약 30가지의 수기(손기술) 중에 우리 영화도 비슷한 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같은 수기를 써도 배경이 달라지면 다른 것 같이 보일 것이란 말은 사실 그 말 그대로였다. 위에 열거한 영화에서의 수기 액션은 모두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배경의 문제. 즉 베를린이라는 나라의 특징과 심리상 느껴지는 색감. 또 어떤 배우가 얼마만큼 움직이는가에 따라서 달라 보이는 액션 씬은 배경과 배우들의 호흡으로 더욱 리얼하게 받아들여졌으리라.
류 감독은 <베를린>을 찍으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약을 무척이나 많이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야 할 씬들이 많았고, 영화 <지아이조> 촬영 때문에 미국으로 가 있는 정두홍 무술감독과의 질기고 비싼 통화를 통해서 그 스트레스의 합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
이번 <베를린>을 통해 그의 액션 씬은 어찌 됐든 배경에 완벽히 녹아나는 기시감 없는 액션 씬으로 거듭났다고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도 10여 년 동안 징글징글하게 싸우는 것만 찍었다고 하여 찾은 인터뷰이들을 폭소케 했다. 그만큼 스스로 적정선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류승완 감독에게 누구라도 궁금한 것이 있다면 앞에서 이야기했듯, 속편에 대한 궁금증일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좀 다른 질문을 했다. ‘오픈 결말을 미리 생각하고 제작을 했는지를!’
그런데 그의 말 중 흥미로운 대목이 나왔다. 결말이 원래 세 가지 정도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류 감독의 다른 결말들을 옮겨 소개해 본다.
“원래 제일 하고 싶었던 결말은 정진수가 현장에서 두 부부가 살리는 것이었어요. 현장을 죽은 것처럼 위장을 해주는 거죠. 소지품과 표종성의 피, 연정희의 피를 이용해 시체를 위장해 주고, 그 두 부부가 제3국으로 떠나는 것을 찍고 싶었어요. 이어 암스테르담 국경을 넘어가는 버전이 있었죠”라며 첫 버전을 소개했다. 언뜻 듣기에도 재밌는 스토리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버전의 경우는 류 감독 말대로 시나리오를 써 놓으니 100억을 넘는 스케일이 되어 있었다는 말은 더는 스토리를 확대해 큰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 그가 하고 싶었던 결말 두 번째는, “사건이 다 정리되고 남측으로 넘어오는 결말이 있었어요. 기차를 타고 파리의 안가를 향해 쭉 가는데 기차에서 표종성한테 메시지가 와요. 표종성이 그래서 ‘아 우리는 못 벗어나는구나’라며 낙담하다가 메모를 남겨놓는 거죠. ‘난 다시 돌아온다’하고 기차에서 탈출해서 쫙 달려가는 그런 버전이었어요. 그런데 본 시리즈와 같더라고요”라고 해 또 한 번 웃음을 줬다. 하지만 그 줄거리도 흥미로운 건 마찬가지.
그래서 빼고 세 번째 결말을 생각했다고 한 것이 “마지막으로 그럴 바엔 다 죽입시다! 란 말이 많은 사람한테 나왔어요. 그래서 다 죽는 결말을 만들려고 했죠. 연정희만 살고 안가에서 기다리는데 표종성이 그 안가까지 오는 과정에 내부 뒷거래가 생기는 이야기. 평양 경유 가스관 사업 뒷거래가 생겨서 표종성을 묻어라! 라는 지령들이 보이는 구조. 즉, 평양과 서울이 딜을 해서 얘가 차를 갈아타는데 아랍 애들이 들이닥쳐 총으로 쏴 죽이는 거죠. 그걸 모르고 연정희는 혼자 기다리는 버전이 마지막이었죠” 쉽게 볼 수 있는 구조지만 그래도 왠지 감성적인 장면이 될 수 있는 이 결말은 그러나 류 감독에게는 고민거리였다.
류 감독은 마지막 결말을 쓰면 예산이 반으로 줄어드는 문제를 갖기에 그 결말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인터뷰 중 나온 이 세 가지의 또 다른 결말도 꽤 흥미로운 결말로 들렸다.
류승완 감독의 이 세 가지 결말은 어쩌면 관객이 갖는 영화 감상 후의 미련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더 아쉬움을 갖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칼럼니스트 김영삼 susia032@naver.com]